PROJECT1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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싫었던 길 DAY 8
반짝이는 아침 햇살 속으로~ 꿈을 안고 차오르는 새처럼~ 푸른 가슴 따사로운 숨결로~ 달려가는 여성시대~~♪ 어렸을 때 전 이 노래를 정~~~~~말 싫어했습니다. 왜냐하면 유치원 대신 다녔던 웅변학원 등원 버스에서 항상 등원 시간에 맞춰 '양희은의 여성시대' 오프닝 송으로 이 노래가 흘러나왔기 때문입니다. 기분 탓인지 학원버스를 타고 학원을 가는 길은 슬로 모션처럼 느껴지면서도 순식간에 지나갑니다. 버스에서 내려 계단을 올라가는 길은 항상 춥고 막막합니다. 건물에 볕이 안 들어서 그런지 기분 탓이었는지 모르겠지만, 그 학원 입구를 떠올리면 뭔가 항상 추웠던 것 같습니다. 딸기반에 다닐 적에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00이라는 애가 절 좋아했는데, 그걸 알고는 선생님들이 저와 00이를 앞에 불러놓고 뽀뽀를..
2019.09.27 -
은하맨션의 내 소꿉친구(2) DAY 7
같은 통로 4층에는 저와 동갑인 혜원이가 살았는데 그 친구는 토깽이라는 이름을 가진 토끼를 키웠습니다. 하루는 그 친구가 놀이터에 토깽이를 데리고 나왔는데, 주변에 있던 애들이 한 번 만져보고 싶다고 우르르 달려가 구경했습니다. 하나둘씩 돌아가며 토깽이를 안아보고 다음 친구에게 넘겨주고를 반복했습니다. 그 과정이 너무 싫었는지 토깽이는 몸부림을 치더니 꼬마들 품에서 탈출을 했습니다. 토깽이를 놓치자 아이들이 당황했는지 혜원이를 남겨두고 집으로 가버렸습니다. 저는 같이 놀진 않았지만 그냥 그 친구가 너무 딱해보였는지 무슨 이유에서였는지 토깽이를 잡는 걸 돕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주차장 차 밑으로 숨어버린 토깽이를 찾기위해 저녁이 다 되도록 바닥을 기어다녔습니다. 혜원이는 거의 울기 직전이 되었고 저도 하루..
2019.09.26 -
동울산시장 끝자락 DAY 5
제가 초등학교 3학년 때쯤 저희 엄마는 식당을 하셨습니다. 아빠와 친한 회사 아저씨네 아주머니와 함께 '전주 참붕어찜' 집을 하셨는데, 은하 맨션에서 가게까진 어른의 걸음으로 30분 정도 떨어진 곳이었습니다. 찾아가는 건 어렵지 않았습니다. 은하아파트 후문으로 나와서 만 세대 아파트 사이로 계속 걷다가 만 세대 아파트 색깔이 달라지는 부분 (다 같은 만 세대 아파트여도 아파트 색이 구간별로 조금씩 달랐습니다.) 직전에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려 미포교회가 나올 때까지 동울산 시장을 통과하는 내리막을 걸으면 됩니다. 저는 학교를 마치면 3살어린 남동생과 학습지를 챙겨 그 길을 걸어 동울산 시장 끝자락에 있는 엄마 가게에 갔습니다. 그때는 뭐 그리 힘이 넘쳤는지 하루에도 몇 번을 왔다 갔다 했습니다. 가게에 도..
2019.09.24 -
은하맨션 (거실에서의 기억)DAY 4
우리 집, 은하 맨션 B동 207호의 거실엔 황토색 뻐꾸기시계가 있었습니다. 정각이 되면 뻐꾸기가 문을 열고 나와 뻐꾹뻐꾹 하고 우는데, 저는 그 뻐꾸기를 보는 게 좋았습니다. 시계 밑에는 발을 딛고 올라갈 수 있는 선반이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의자를 끌어다 밟고 올라가도 겨우 초등학교 저학년 생이었던 저는 손이 잘 닿지 않아서 뻐꾸기 집 문을 열어 보고 싶은 마음을 꾹 참고는 '저 문을 열면 뻐꾸기 가족들이 2층 집에서 살고 있고, 아빠 뻐꾸기가 정각마다 일하러 나오는 거야'라고 생각하며 즐거워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뻐꾸기시계의 위치를 TV가 놓여있는 벽면으로 옮기게 되었습니다. 그쪽엔 선반이 있었기 때문에 기대를 품고 선반을 밟고 올라가 뻐꾸기 집 문을 조심히 열었습니다. 안타깝게도 시간을 알려..
2019.09.23 -
프로젝트100을 시작하면서... DAY 1
몇년 전까지만 해도 저는 제가 겪은 것들에 대한 뚜렷한 기억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주 어린 시절의 일, 남들은 기억하지 못하는 상황들, 언제 어디서 누가 어떤 말을 했는지 그 때 내 마음이 어땠고 상대방의 마음은 어때 보였는지 등을 뚜렷하게 기억했어요. 그런데 언제부턴가 그 생생하던 기억들이 '꿈이었을까?' 싶을 정도로 희미해져 가고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어린 시절 제가 살던 동구는, 만 세대가 머물던 그 동네의 흔적은 몇 년에 걸쳐 재개발과 함께 사라졌습니다. 이제는 온전히 기억속에만 존재하는 그곳의 풍경과 추억들을 더 희미해지기 전에 글로 기록하려 합니다. 살아가면서 문득 마음에 찬바람이 들 때, 누구에게도 위로를 얻을 수 없을 때, 그럴 때마다 앞으로 하루하루 남길 기록들을 보며 스스로 위로할..
2019.09.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