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9. 23. 13:15ㆍAmazing Day/kakao '프로젝트100' 기록
우리 집, 은하 맨션 B동 207호의 거실엔 황토색 뻐꾸기시계가 있었습니다.
정각이 되면 뻐꾸기가 문을 열고 나와 뻐꾹뻐꾹 하고 우는데, 저는 그 뻐꾸기를 보는 게 좋았습니다.
시계 밑에는 발을 딛고 올라갈 수 있는 선반이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의자를 끌어다 밟고 올라가도 겨우 초등학교 저학년 생이었던 저는
손이 잘 닿지 않아서 뻐꾸기 집 문을 열어 보고 싶은 마음을 꾹 참고는
'저 문을 열면 뻐꾸기 가족들이 2층 집에서 살고 있고, 아빠 뻐꾸기가 정각마다 일하러 나오는 거야'라고 생각하며
즐거워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뻐꾸기시계의 위치를 TV가 놓여있는 벽면으로 옮기게 되었습니다.
그쪽엔 선반이 있었기 때문에 기대를 품고 선반을 밟고 올라가 뻐꾸기 집 문을 조심히 열었습니다.
안타깝게도 시간을 알려주던 그 뻐꾸기는 아빠 뻐꾸기가 아니었습니다.
제 상상과는 다르게 뻐꾸기는 겨우 얇은 판때기 위에 발이 묶인 채로 알 수 없는 기계들과 함께 있었습니다.
기대와 달랐던 뻐꾸기의 독신 생활에 조금 섭섭하긴 했지만, 그래도 저는 줄곧 그 뻐꾸기시계를 좋아했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 겨울 이삿날,
나보다 더 먼저 우리 가족에 들어왔던 뻐꾸기는 너무 낡아 있는 상태였고
엄마 아빤 뻐꾸기 시계를 새 집으로 데려갈 마음이 없어 보였습니다.
이삿짐센터에서 짐을 빼가고 휑해진 그 집 바닥에 뻐꾸기시계가 누워있었습니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후로는 열어본 적 없는 뻐꾸기 집 문을 다시 열어보기 위해 시계 앞으로 다가갔습니다.
하얗던 뻐꾸기가 노랗게 변색이 되어 활력을 잃은 듯한 모습을 보니
짠하기도 하고 괜스레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뻐꾸기시계의 유행이 지났기 때문에 다시 뻐꾸기시계로 만들어지긴 힘들겠지만,
또 다른 예쁜 물건을 만드는 데에 쓰일 거라고.
누군가에게 좋은 추억을 선물하며 우리 집에서 그랬듯 또다시 존재감 있는 물건으로 태어나라고
저 나름대로 뻐꾸기에게 은퇴 인사겸 작별인사를 건넸습니다.
은하 맨션의 거실을 떠올리면 빼먹지 않고 생각나는 뻐꾸기시계.
지금도 여전히,
재밌는 상상을 선물해 준 그 뻐꾸기가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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