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 산 - 도남매 이야기(1) DAY 12

2019. 10. 1. 23:20Amazing Day/kakao '프로젝트100' 기록

나는 유독 동생과 친하다.

어린 시절 가장 함께한 시간이 많은 가족이기도 하지만,

우리가 싸울 때면 부모님이 종종 쓰는 방법들이 제법 효과가 좋았다.

얼마나 크게 싸우냐에 따라 다르지만 치고받고 싸울 때면 가끔 몽둥이보단 아파트 뒷산에 같이 올려 보내셨다.

우리는 잔머리 굴릴 생각 없이 정말 손잡고 올라갔다 온다.

은하 맨션 후문으로 나와 신호등만 건너면 바로 뒷산으로 올라가는 입구가 있다.

처음 입구부터 한 2-30분 정도 오르막 길은 동생이 꼴도 보기 싫다.

손도 잡기 싫지만 순진하게도 엄마 아빠한테 들킬까 봐 잡고 올라간다.

그렇게 올라가다가 누구 하나 발이 미끄러지면 둘 다 놀라 괜찮냐고 묻는다.

또 산 바로 아랫마을 발바리가 목줄이 풀린 채 돌아다니다 우리 앞을 지나칠  때면

나와 동생은 바짝 긴장해 서로의 손을 꼭 잡는다.

혹여나 다른 쪽 손을 주머니에 넣고 있으면 그 손에 먹을 것 있는 줄 알고 쫓아올 까 봐,

일부러 주머니에서 손을 빼고 쫙 펼친 채로 걷는다.

그리곤 동생한테, 최대한 개랑 눈 마주치지 말자며 꼭 붙어서 조심히 지나간다.

그러는 동안 미움이 세상 끈끈한 형제애로 돌아온다.

지금은 둘 다 성인이 되어 싸울 일은커녕 얼굴도 자주 못 보지만,

심각한 고민이 생길 땐 어김없이 서로를 찾는다. (물론 심심할 때나 기분 좋을 때도 찾는다.)

어쩔 땐 부모님 모르게 서로의 비상사태를 함께 해결한다. 

 

성인이 되고 사회에 나가서는

이 세상엔 뒷산에서 발을 헛디디는 것보다 훨씬 더 아찔한 순간이 있다는 걸 깨닫게 되었고,

목줄 풀린 개를 마주할 때보다 더 긴장되는 일도 있다는 걸 몸소 겪어 알게 되었다.

그리고 '앞으로 살다 보면  분명 또 그런 순간들이 있겠지~' 하는 생각이 들면, 

존재만으로도 위로가 되는 사람이 부모님 말고도 둘이나 더 있다는 사실이,

참 감사하다.